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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들은..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세상을 가져오리라고 생각해요."

    
                 - 엄마가 키미코를 처음으로 인정하는 순간.


 

"잠깐이었지만,

내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 "

                         - 사나에와 헤어지는 순간.




도대체 뭘까.. 항상 일본 영화를 볼때마다 느꼈던.. 이 묘한 감정은..?
늘 그랬다. 딱히 떠오르는 분명한 이유는 없는데, 마냥 좋았다. 뭔가 모르게 묘한 매력이 있다.. 라고 밖에 표현이 안되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깝다는 이유로 우리는 일본을 닮으려고 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특히 상품에 관해서는 완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모방 수준에 이르는 것들도 많다.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앞서 언급했던 두 가지 이유 때문일까? 그렇다면 아예 붙어 있는 중국은 왜 그렇게 모방하지 않는 것일까?

뒤늦게 본 <훌라걸스>에서 나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카리스마'였다. 너무 모호한 답이 아니냐고? 모호해 보이지만, 사실은 너무도 분명한 답이다.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좋아하는 배우들이 꼭 여러명씩 있다. 그건 한국 배우들을 향한 설레임과는 또 다른 설렘이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늘 카리스마를 분출한다. 그들은 캐릭터 하나를 위해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감춘다. 자신의 매력을 잠시 숨겨두고 영화 속에서 캐릭터로 새로이 탄생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관객을 제대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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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가 춤을 추는 광고를 보면서, 너무 멋있어서 그녀에게 빠져드는가? 물론 너무 완벽한 외모때문에 그런 느낌을 갖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내가 봤을 때는, 저 광고 찍으려고 잠깐 배웠구나.. 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즉, 몰입해있는 캐릭터가 보이지 않고, 원래 가지고 있는 배우 자체만 강조된다. 물론 광고라서 그렇다고 하면 그건 그렇게 넘어갈 수 있지만, 연기에서도 그다지 카리스마가 보이지는 않는다. 김태희 뿐만 아니라 멋진 외모에 가려진 매력을 제대로 분출하지 못하고 있는 배우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좀 안타깝다.

그에 비해 아오이 유우의 훌라춤을 보면 가히 감동적이다. 단지 춤 자체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녀가 완벽한 이유는 춤을 추는 내내 캐릭터에 몰입해 있는 표정때문이며, 영화 내내 반복되는 그녀의 그녀 주변인들간의 사투리 대사 때문이다. 그녀는 그렇게 늘 새로운 영화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최근에 본 <철콘 근크리트>에서 시로 역의 목소리 연기는 마지막에 엔딩크레딧에서 그녀의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깜빡 모르고 지나칠 뻔 했을 정도로 완벽한 남자 꼬마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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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걸스>는 60년대 탄광촌에서 벌어진 '하와이 센터' 설립 사건을 그린 영화다. 탄광촌과 하와이 센터는 이질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석탄이 검은 다이아몬드 였을 시기가 있었다. 모든 집안의 남자들은 탄광촌에서 일했고, 그 아들들은 어른이 되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탄광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석유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탄광촌이 하나 둘 폐쇄된다. 더이상 석탄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다. 그들의 삶에 박차를 가하게 해준 석탄은 이제 퇴물로 취급되며 짧은 시간에 수천명의 사람들이 탄광촌의 폐쇄와 더불어 일자리를 잃게 된다.

무서운 것은,, 여기에서 사회의 변화를 사람들은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 있다. 변화된 사회에 걸맞게 새로운 그들만의 다이아몬드가 필요한 때에, 선견지명으로 모든 비난을 무릅쓰고 등장하는 인물이 하나 있다. 그는 '하와이 센터'라는 이름으로 온천을 개발하여 새로운 관광 사업으로 도시를 살려보고자 한다. 모든 기성층이 쌈심지를 켜고 그를 막아설 때 그들의 2세들은 '하와이 센터'를 그들의 새로운 '다이아몬드'로 가꾸기 위해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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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누군가는 엄마와의 인연도 끊고, 누군가는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하고, 또 누군가는 끝내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꿈은 남은 이들에게 남기고 떠나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인고의 세월(?)을 뛰어넘고 마침내 그들만의 '다이아몬드'를 완성한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그들의 훌라춤은 완전 압권이다. 환한 미소와 함께 빛을 내고 있던 그들의 눈물 어린 눈망울은 아직도 가슴을 찡하게 한다.

이야기도 좋지만, 영화에 빛을 밝혀주는 그 배우들이 감동이다. 역시, 일본 감독들은 배우들을 적시적소에 배정할 줄을 아는 신비한 안목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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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빛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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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그런 영화들이 있다... 배우들의 포스가 너무 강해서 영화의 다른 부분들, 즉 미흡한 스토리 구성이나, 어설픈 화면처리,, 등의 중요한 부분들이 살짝 숨겨지는 영화들, 혹은 그 반대로 포스가 강한 배우에게로의 지나친 치우침 현상으로 인해 좋은 스토리와 배경화면이 가려져서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영화들.. 사실 전자일 경우는 어떻게 보면 결국 유리한 결과이니 좋다고 밖에 말못할 수도 있겠지만, 후자의 경우는, 오히려 좀 부족한 아우라를 가진 배우를 쓰는게 더 나았는지 모른다는 안타까운 비명들을 여기저기서 들을 수도 있다.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40대 가장을 연기한 와타나베 켄의 경우가 바로 전자의 경우다. 쌩뚱맞을진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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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시드니 폴락 감독의 '인터프리터'(2005)를 떠올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보고나서도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 니콜 키드먼과 강한 포스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숀 펜 때문이다. 스토리 따윈 금방 잊혀져버렸다. 다른 이들에게 영화에 대해 얘기할 때도 '니콜 키드먼 진짜 이뻐.'가 전부였다..ㅜ.ㅜ 광고회사에서 잘나가는 부장님역을 한 와타나베 켄은, 그가 나오는 장면 모두가 인상적이다. 마치 장면 하나하나가 정지된 채로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하는 영화 포스터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가 허리숙여 사과할때,, 그리고 벽에 머리를 박으며 통곡할 때.. 나도 진실로 가슴이 아팠으니..

 알츠하이머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많이 있다. 항상 현대 의학자들의 주먹을 불끈불끈 쥐게 만드는 소위 말하는 '불치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눈물을 자아낼 수 있다. 하지만 중심되는 소재 외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동반소재가 있어야만 관객도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배우들끼리 울다가 끝나버리는 그냥 그런 드라마에 불과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나는 와타나베 켄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들에서 이상하게도 함께 울컥해졌다. 미안하지만 다른 장면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일의 기억>에서의 동반소재는 무엇이었을까? <내 머리속의 지우개>처럼 뜨거운 사랑이 있는가? 아니면 온 가족이 하나같이 하루하루가 힘겹기만 한 삶을 보여주고 있는가? 아니면, 병에 걸린 자신이 스스로 힘든 역경을 헤쳐나가는가? 사실 이러한 조건은 아무것도 갖추고 있지 않다. 영화는 주변 사람이나, 혹은 병에 걸린 당사자의 '병으로 인한 아픔'을 그리고 있지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영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한 가장이 겪는 삶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와타나베 켄이 나오는 장면이 슬프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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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회사를 다녔지만, 사실 그로 인해 가족들에게 소홀히 하게 되어 그들에게 마음 한구석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26년간 지독히도 몸 바쳤던 회사를 떠나면서 부하직원들의 존경어린 배웅에 눈물을 흘리고, 자기밖에 모르는 배은망덕한 직장후배에게 '씩!씩!하게 하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 장면에서 또 눈물을 글썽거린다. 눈에 거슬리는 놈이지만, 자기가 더이상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바톤을 잘 이어받아야 자신도 뿌듯할 수 있으므로 꾹 참고 좋은 말만 내뱉어버리는 것이다. 평생 일밖에 몰라서 관심을 주지 못했던 외동 딸이 결혼하는 날 밤새 준비한 축사를 잃어버렸지만, 마음만은 그 축사만큼 꼭 전하고 싶다고 말을 하며 하객들 앞에 고개 숙여 눈물 흘린다. 그는 병에 걸린 자신의 처지도 불쌍하지만, 사춘기 시절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딸을 보며 마음이 아팠을 것이고, 또 이 모든 역할을 대신해 줄 사위를 보면서도 미안하고 고마웠을 것이다. 또한 부인이 돈을 모으기 위해 일터에 뛰어든 모습에 자신이 죽어야 한다며 통곡을 한다. 부인에 대한 사랑도 물론이겠지만, 여기서는 자신때문에 고생하는 부인에 대한 미안함이다. 즉, 이 영화에서는 '50대 가장이 지녀야 하는 무게들'이 바로 알츠하이머의 동반소재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삶의 무게들을 지닌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꼭 무시무시한 병에 걸리거나 어떤 큰 일을 겪어야만 모든 나의 삶이 무게들을 돌아보게 된다. 죄책감때문에 마음이 더 아픈 이 불쌍한 가장의 일상을 통해서 자기전에 한번이라도 꼭 하루를 돌아보는 삶을 살아가자고 입바른 소리 한번 해보면서 이 글을 끝낼까 한다.
Posted by 풀빛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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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각으로 인한 우리의 기억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분명히 그 술집을 우리 동네에서 봤다고 간판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해냈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 집하고는 30분은 떨어져 있던.. 퇴근 길 버스에서 창밖으로 늘상 보던 이미지 중 하나였음을 알았을 때.. 괜히 머쓱해지며 고개 한번 갸우뚱하게 되는 그런..  영화 <유레루>는 딱 이런 영화다.

 마치 공기와도 같아서 늘 옆에 있고, 내가 숨 쉴 수 있게 해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늘 그 존재감을 깨닫지 못했던 형에 대한 오해와 진실.. 믿음과 불신... 배신과 용서...

 
* 용서하는 자와 용서 받는자?

그 동안 형을 믿어왔던가, 불신해왔던가.. 믿어왔어야만 불신이 생기고, 그래야 용서할 일이 생기는 법인데, 여기서는 용서하는 자와 받는자는 존재하지만, 잘못을 한 이는 없고, 불신을 당한 사람도 없다.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일어난 단 한 번의 사건으로 '그 동안 믿어왔는데..' 와 같은 감정들이 솟아나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불신이라는 감정으로 치닫고 만다.

자칫 억지스러워 보일 지 모르나, 이와 같은 설정은 '가족'이기에 가능하다. 보이지 않고, 오랫동안 잠적해온 감정들이란, 사소한 사건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는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내 피붙이기에 인지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동안 믿어왔는지, 미워했는지, 빼앗김에 질투의 화살을 품고 있었는지, 빼앗으면서 자신만 즐겨왔는지 어쩌면 일부러 생각하지 않는 이상 인지하지 않고 지내는 게 우리의 일상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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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형제'라는 이름으로 공기처럼 지내 던 이들에게 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사건으로 인해, 아무도 모르게 쌓여 왔던 수많은 복잡한 감정들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 걷잡을 수 없는 묘한 감정들로 인해 '형제'라는 이름의 탄탄함이 미세한 떨림으로 스케치 되기 시작하다가, 결국에는 제대루 흔들려서 판단력 마저 흐려진다. 사건이 났던 다리는 이들의 감정의 흔들림의 시작을 선고한 것이다. 잊고 지내던 가족들과의 관계는 이처럼 거대한 사건 앞에 타인보다 더 잔인하게 무너진다.

 지독하게도 연기를 잘 하던 '오다기리 조'와 '카가와 테루유키' 덕에 나는 따뜻하고 잔잔한 가족과 미묘한 감정들을 잘 표현해낸 영화다.. 라고 하기 이 전에 살짝 겁부터 났다. 어느 순간 무섭게 돌변할지도 모를 관계가 바로 가족이라는 현실에..

 사실 내가 서울에 와서 받은 문화적 충격 중 하나가 가족관계였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 이다보니, 지방에 비.해.서. 가족간의 친목이 덜 끈끈한 것 같았다. 물론 집안마다 다르겠지만, 서로 연락도 안하고 인연을 끊고 지내는 형제들도 부지기수였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평생을 간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한번 더 가족들에게 안부 인사 전화 한통 드리는 것이 어떨는지..;;

Posted by 풀빛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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