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영화들이 있다... 배우들의 포스가 너무 강해서 영화의 다른 부분들, 즉 미흡한 스토리 구성이나, 어설픈 화면처리,, 등의 중요한 부분들이 살짝 숨겨지는 영화들, 혹은 그 반대로 포스가 강한 배우에게로의 지나친 치우침 현상으로 인해 좋은 스토리와 배경화면이 가려져서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영화들.. 사실 전자일 경우는 어떻게 보면 결국 유리한 결과이니 좋다고 밖에 말못할 수도 있겠지만, 후자의 경우는, 오히려 좀 부족한 아우라를 가진 배우를 쓰는게 더 나았는지 모른다는 안타까운 비명들을 여기저기서 들을 수도 있다.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40대 가장을 연기한 와타나베 켄의 경우가 바로 전자의 경우다. 쌩뚱맞을진 모르나,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시드니 폴락 감독의 '인터프리터'(2005)를 떠올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보고나서도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 니콜 키드먼과 강한 포스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숀 펜 때문이다. 스토리 따윈 금방 잊혀져버렸다. 다른 이들에게 영화에 대해 얘기할 때도 '니콜 키드먼 진짜 이뻐.'가 전부였다..ㅜ.ㅜ 광고회사에서 잘나가는 부장님역을 한 와타나베 켄은, 그가 나오는 장면 모두가 인상적이다. 마치 장면 하나하나가 정지된 채로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하는 영화 포스터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가 허리숙여 사과할때,, 그리고 벽에 머리를 박으며 통곡할 때.. 나도 진실로 가슴이 아팠으니..
알츠하이머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많이 있다. 항상 현대 의학자들의 주먹을 불끈불끈 쥐게 만드는 소위 말하는 '불치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눈물을 자아낼 수 있다. 하지만 중심되는 소재 외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동반소재가 있어야만 관객도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배우들끼리 울다가 끝나버리는 그냥 그런 드라마에 불과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나는 와타나베 켄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들에서 이상하게도 함께 울컥해졌다. 미안하지만 다른 장면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일의 기억>에서의 동반소재는 무엇이었을까? <내 머리속의 지우개>처럼 뜨거운 사랑이 있는가? 아니면 온 가족이 하나같이 하루하루가 힘겹기만 한 삶을 보여주고 있는가? 아니면, 병에 걸린 자신이 스스로 힘든 역경을 헤쳐나가는가? 사실 이러한 조건은 아무것도 갖추고 있지 않다. 영화는 주변 사람이나, 혹은 병에 걸린 당사자의 '병으로 인한 아픔'을 그리고 있지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영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한 가장이 겪는 삶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와타나베 켄이 나오는 장면이 슬프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회사를 다녔지만, 사실 그로 인해 가족들에게 소홀히 하게 되어 그들에게 마음 한구석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26년간 지독히도 몸 바쳤던 회사를 떠나면서 부하직원들의 존경어린 배웅에 눈물을 흘리고, 자기밖에 모르는 배은망덕한 직장후배에게 '씩!씩!하게 하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 장면에서 또 눈물을 글썽거린다. 눈에 거슬리는 놈이지만, 자기가 더이상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바톤을 잘 이어받아야 자신도 뿌듯할 수 있으므로 꾹 참고 좋은 말만 내뱉어버리는 것이다. 평생 일밖에 몰라서 관심을 주지 못했던 외동 딸이 결혼하는 날 밤새 준비한 축사를 잃어버렸지만, 마음만은 그 축사만큼 꼭 전하고 싶다고 말을 하며 하객들 앞에 고개 숙여 눈물 흘린다. 그는 병에 걸린 자신의 처지도 불쌍하지만, 사춘기 시절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딸을 보며 마음이 아팠을 것이고, 또 이 모든 역할을 대신해 줄 사위를 보면서도 미안하고 고마웠을 것이다. 또한 부인이 돈을 모으기 위해 일터에 뛰어든 모습에 자신이 죽어야 한다며 통곡을 한다. 부인에 대한 사랑도 물론이겠지만, 여기서는 자신때문에 고생하는 부인에 대한 미안함이다. 즉, 이 영화에서는 '50대 가장이 지녀야 하는 무게들'이 바로 알츠하이머의 동반소재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삶의 무게들을 지닌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꼭 무시무시한 병에 걸리거나 어떤 큰 일을 겪어야만 모든 나의 삶이 무게들을 돌아보게 된다. 죄책감때문에 마음이 더 아픈 이 불쌍한 가장의 일상을 통해서 자기전에 한번이라도 꼭 하루를 돌아보는 삶을 살아가자고 입바른 소리 한번 해보면서 이 글을 끝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