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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관이 내게 물었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가 뭐냐고.. 최근 본 무수히 많은 영화 중 단연코 대답은 '밀양'이었다. 왠지 질문이 계속되도 대답할 꺼리가 제일 많을 것 같으니까.. 그러자 면접관이 웃으며 말했다.

'흠, 이 영화는 **씨같이 어린 사람들이 공감하긴 쉽지 않았을텐데요, 적어도 나이가 30이상은 되야 뭔가 와닿지 않나?'
 
그 말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일단 나이가 면접관이 정한 기준에 아주 근접(-_-;;)해있고, 그리고 나 또한 신애가 겪은 심정들을 느껴본 적이 있으니..

인간은 누구나 한번쯤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새롭게 시작하고싶은 욕망이 있다. 특히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그리고 그 상처들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봐줄 때 인간은 숨고 싶어진다.

잠깐은 위로가 되나, 자꾸만 알아봐주고 다독여주면, 어느새 나는 이미 '상처받는 사람', '위로가 필요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버리므로, 시간을 길게 놓고 봤을 때, 그러한 상황들은 결국 나를 더욱 더 작게 만든다. 그러므로, 상처받은 자는 늘 숨을 곳을 찾기 마련이다.

남편이 어느 젊은 여자와 바람도 피고, 급기야 죽음으로써 완전히 혼자 '상처받은 자'로 낙인찍혀버린 신애는 남편의 고향이랍시고,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밀양'이라는 도시로 살러 간다. '비밀의 빛'이라는 뜻을 가진 그 곳은 왠지 신애가 숨기고픈 비밀을 그야말로 제대로 숨겨줄 수 있는 곳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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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럽게 스며들려했던 신애를 가장 먼저 수면위로 떠오르도록 훼방놓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카센타 사장 김종찬(송강호)다. 서른아홉 노총각 눈에 서울에서 온 남편없는 신애는 접근하기 딱 좋은 상대다. 신애가 어딜가나 졸졸 쫓아다니고, 동네유지들을 소개시켜주고, 신애를 서울에서 온 피아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닌다. 아무도 모르게 숨고팠던 신애는 그의 행위들로 인해 좁은 동네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오히려 관심의 대상이 된다.

두번째로 그녀를 완전히 노출시킨 사람은 동네 약사 김집사(김미향)이다. 나 참.. 그 여자의 오지랖과 남의 상처를 위로삼아 툭툭 건드리는 그 행위는 내 신경을 제대로 건드렸다.-_-++ 가만히 있는 신애에게 전도를 목적으로 접근해서 '당신은 불행한 사람이지? 나 그거 알고 있어. 내가 도와줄게. 교회다녀..'-_-; 라고 떠든다. 더 짜증나는 건, 그 여자의 방정맞은 소음으로 인해 신애는 준이를 잃는다는 거다..킁..

아. 이게 상처구나.. 라고 하면서 마음 깊이 느낀 적이 딱 한번 있다. 정말이지 지금까지 내가 겪은 상처들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은,,, 너무나도 큰 상처였다. '상처'라고 어디 가서 함부로 이름지어서는 안된다는 걸 알게된 사건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주변에 그 사건을 아는 사람이든, 혹은 그냥 어디서 들어서 알게된 사람이든.. 아무튼 아는 척 하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럴때는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할 지를 모르겠다. 정말 내 마음에 큰 대 못 하나가 박혀있는데, 괜찮다고 아주 사회성 밝은 짓거리를 해야 하는건가, 아니면, 그냥 잊고 살아요. 라고 무시하는 척을 해야하나.. 아니면, 다시 슬픈 표정을 지어보이며 동정심이라는 거 사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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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반응를 보이던 간에,, 그리고 사람들이 위로의 목적이든 아니든 간에, 그들이 일단 아는 척을 하는 순간, 내 가슴 속 대못은 순간적으로 살짝 흔들린다. 그 떨림은 대뇌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기억들을 자극하여, 내 얼굴은 얼어버린다. 머리는 이미 그 기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마음은 상처 주변으로 더 깊게 후벼파진다. 이러한 작용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아는체 하는 그들에게 감히 화를 낼만한 거 아닌가.

신애의 이러한 숨고픈, 숨기고픈 심정들을 너무도 잘 표현한 전도연에게 감사한다. 내면의 고통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표정관리 안되는 떨떠름한 그런 상황, 그 표정을 사람들이 잘 봐두었으면 좋겠다.

그저 연기로만이 아니라, 그런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 조금만 더 신경쓰고, 쓸데없이 위로한답시고, 전도한답시고 아는 체 하는 인간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Posted by 풀빛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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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13 12:24

    안녕하세요? 풀빛소녀 님.
    블로그를 시작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는데 트랙백다운 트랙백이 처음으로 제 글에 걸렸네요. 더구나 그 트랙백의 내용이 저의 오랜 친구가 감독한 영화의 감상문라는데 더욱 고무적인 기분이랍니다.
    그래서 저도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남의 글에 트랙백을 걸어 봅니다. 건강하세요. (^^ )

  2. 2007.07.13 16:31 신고

    저도 이곳으로 이사온 지 얼마 안되었어요~ 날짜 수정해서 한꺼번에 글을 올렸거든요~^^ 카오스님 저의 새 집에 첫 덧글을 달아주셨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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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행이다.. 귀신 얘기가 아니라서.. (하긴.. 이게 귀신얘기였다면, 그 어설픈 귀신 분장들 다 어떡할끄야..ㅋㅋ) 그렇다면 스릴러인가? 흠.. 영화를 보면서 '범인이 누굴까?'에 초점이 맞춰지는 게 아니므로 스릴러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도대체 관객에게 어떤 반응을 요구하는가? <극락도 살인사건>은 <그놈 목소리> 같은 일종의 사회적인 영화다. <공공의 적>에서 코믹과 조폭 등의 요소들을 접목시켜 사회적인 비리를 고발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 처럼, <극락도 살인사건>도 마찬가지다. 정말이지 영화 <셔터>이후 오랜만에 뵙는(?) 열녀귀신의 등장으로 '호러'요소를 가미하고, 뜻밖의 살인사건과 등장인물들의 행방불명 등으로 인해 '스릴러'요소를 하나 더 갖다붙인 제대로 된 '사회고발' 영화다. 그리고 약자에 대한 가슴아픈 현실을 담은 '인권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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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쾌청한 자연과의 조화로 인해 마치 극락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극락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 또한 바깥 육지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든지 관심없고 그야말로 거침없이 '순수'하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의심'이라는 단어를 모른다. '방패막'이라는 단어도 모른다. 다른 이들을 굳이 의심할 일도 없고, 나를 꼭꼭 숨겨서 타인으로부터 보호를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서로 의지하며 자연과 함께 하하호호 살아가면 그 뿐이다. 이런 그들에게 자연을 거스르기 위한 요상한 검은 손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살인사건'이다. 사실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좀 우습다. 그냥 '살인'이라는 현상이 하나 벌어진다. 그러면 살인자는 존재하는가?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살인자'는 아니다. 살인은 벌어졌지만, 분명 눈앞에 시체들은 있지만 살인자는 없다. 영화를 홍보할 때 '우리 중에 범인이 있다.!'라는 말은 결국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범인이 아니다라는 말로 받아들이고 있던 나는 '누가 죽였을까?'보다 왜 이런 사건이 발생하였는지에 더 초점이 맞추고 보기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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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사건이 아니다. 하지만, 마을 노인의 칠순 잔치 다음날 시체로 발견된 전기수리공 사건 하나에 국한된 것이 아닌, 마을 전체 살인사건이라고 하면 맞는 말이 된다. 첫 살인부터 시작해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사라지기까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살인사건이다. 감히, 사람을 상대로 자신의 이익을 노린 이의 살인극.. 살인라는 게 단지 사람의 목숨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혼이 담긴 모든 것들을 멸살하는 것이다. 마치 <웰컴 투 동막골>을 연상시키는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티없이 자란 아이들, 그리고 인자한 어른들.. 이 모든 자연스러운 조화를 조금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싹쓸이 해버린 범인이 이 영화에서 유일한 살인범이다.

 어느 누구도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함부로 실험을 할 권리가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를 어길 시에는 무시무시한 부작용이 따라온다. 쉽게 흥분하고 서로를 죽이고 의심하여 결국 모두 몰살하게 되버리는 심각한 부작용현상.. 함부로 주사바늘을 들이대지 말자. 언젠가는 결국 그 주사바늘이 내 팔을 관통하고 있을테니..

늦었지만, 극락도 주민들의 명복을 빌며..
Posted by 풀빛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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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만남에서의 설레임과 조심스러움은 얼마 동안이나 지속될까? 나만의 그 사람 발견하는 순간 주위의 모든 사물이 희미하게 흐려지면서 그 사람에게만 세상의 모든 빛이 투영되는 그 찰나를 사람들은 과연 얼마 동안이나 기억 속에 묻어두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그 찰나는 말 그대로 '찰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너무 강렬하지만, 우리네 인생을 쭉 그어놓고 보면 한 점에 불과하니까. 그 찰나는 기억이 흐려지고 또 흐려져서 완전 깜깜해진 후, 또 그만큼의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천천히 머리 속에서 부상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처음의 그 번쩍하는 섬광같은 만남은 사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큰 의미가 없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관계를 유지해가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의 섬광이 아니다. 그 순간은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매개체에 불과하며 너무 그 순간에 미련을 두지 말자.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순간 이후다. 두 사람의 관계가 점점 두께를 늘려갈 수 있도록 하는 튼튼한 '믿음'과 '노력'이라는 도구를 갖는 것이며, 그 도구를 잘 연마하여 어느 순간 평생의 반려자가 되기까지의 힘겨운 과정을 견뎌내는 '지혜'를 차곡차곡 챙겨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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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eak up'은 나에게 있어 가장 가슴 아픈 영화 중 하나로 기억된다. 진심이 아니면서 흥분해서 내뱉어 버리는 말은 참 많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 비해 기대치가 높은 연인관계에서는 조그만 말도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 위험한 무기가 된다. 단지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걸 함께 하고 싶고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환경을 조성해주고 싶지만, 사실 그건 너무 이기적이다.
 영화에서 브룩(제니퍼 애니스톤)은 본인의 취향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준비를 하고, 원하는 관심을 받기를 원한다. 게리(빈스 본) 또한 본인이 생각한 가장 편안한 환경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살기를 바란다. 어디까지나 개인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환경'이다. 전혀 객관적이지 않고, 누군가가 평가해주는 것도 웃기다. 화해할 듯 안할 듯 하면서 점점 수위를 넘나드는 그들의 대사들은 아직도 내 가슴을 아프게 찔러댄다. 세상에, 이렇게 사실적일 수가 없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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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이 결국 '헤어짐'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극복할 수 있었던 묘안은 분명 그들 속에 숨어 있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쬐끔한 배려다. 브룩은 손님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내내 외로웠고, 가사일에는 작은 심부름 하나 제대로 신경써서 해주지 않는 게리는 이 외로움을 전혀 이해해주지 못한다.
 두 사람이 함께 살고 있는 '우리'집에 손님들이 온다면, 게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함께 의논해서 함께 음식을 준비하는 작은 습관이 둘에게는 필요했다. 브룩이 게리에게 이해안되는(레몬을 장식용으로 많이 사오라는 등..) 심부름만 달랑 시킬 것이 아니라, 그리고 파티가 끝나고 고생했노라고 하소연할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미리 서로 의논을 했어야 했고, 게리에게도 적당히 - 단순 심부름꾼이 아닌- 역할을 나누었어야 했다. 게리 또한 브룩의 세심한 손길에 함께 동참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했고, 다소 희안한 심부름이라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했던 거다.

 아니, 사실 '~했어야 했다'로 빠지면 너무 길어질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제발, 수위를 넘는 발언은 삼가자, 사랑하는 사람이니 만큼, 기대만큼 실망이 크겠지만,
그래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삼세번은 꾸욱 눌러참자, 그리고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에 따라 더 진정되기 보다는 마음이 멀어져버리는 결과가 될수도 있으니, 시간을 끌지도 말자,
제발, 서로 배려하고, 오늘 화해 내일로 미루는 바보같은 짓으로 인해 소중한 사람 잃지 말자,

물론,

연인이라는 끈을 잡고 있는 양쪽 다~!!
Posted by 풀빛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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