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을 위한 삶이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얼마전 누군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이 글이 조금은 지각인생인 나에게 얼만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속도에 밀려서 방향마저도 흔들리고 있던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었다. 누구나 생각했던 것보다 속도가 안나게 되면 조바심이 나게 마련이다. 그 조바심이 무서운 건, 자신이 목표했던 것.. 가장 중요한 삶의 방향을 흔들리게 한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까지도 피해를 주기도 하는 아주 무시무시한 증상이다.



'카모메 식당'에서 주인공 사치에와 그녀의 식당을 찾아오는 인물들은 이런 삶의 조바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잠시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해준다.



사치에

- 부모, 남편, 자식도 없이 오로지 연약한 체구의 여자 혼자 몸으로 먼 핀란드라는 나라까지 와서 식당을 열었다. 손님이 단 한사람도 없지만 결코 조바심 내는 법이 없이 늘 같은 하루를 연다. 우연히 일본만화에 빠진 젊은 친구가(토미) 오자 반갑게 맞이하며 첫 손님이라도 커피를 무한 공짜로 대접하는 친절도 서슴없이 베푼다. 핀란드라는 나라를 지도에 대고 눈감고 손가락으로 찍어서 왔다는 낯선 일본인(미도리 상)에게도 흔쾌히 자신의 집을 내준다. 그녀가 마냥 착하거나 어리숙한 캐릭터는 결코 아니다. 야무지고 당차며 늘 식당에 손님이 가득차길 바라며 메뉴 개발을 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바쁜 현대인과 같다. 그 목표속에서 흔들림없이 주변을 보며 한없이 느긋한 미소로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미도리

- 큰 체구와 코믹한 외모에 걸맞지 않게 소녀적인 감성을 소유한 싱글녀. 농담삼아 핀란드에 멋진 청년을 만나러 왔다고 하고, 만화 캐릭터를 잘 그리고, 만화 주제가도 다 외우고 있는 귀여운 여인이다. 사치에 옆에 있으면서 잃었던 삶의 방향을 조금씩 알게되고, 외롭던 인생이 풍요롭게 무언가로 가득 채워지는 이 여인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사치에상 옆에서 늘 함께하길 원한다. 그녀덕분에 사치에의 삶도 보다 감성도 풍부해지고 '혼자'에 익숙해있던 생활들이 점차 사람을 그리워하는 푸근함으로 바뀌게 된다. 미도리 상은 함께 있으면 참으로 사랑스러운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마사코

- 뭔가 빠진듯한 코믹하지만 진지한 캐릭터.. 자신의 물건을 잃어버리고, 얼마전 일을 자꾸 까먹기 일쑤지만, 위기의 순간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왕언니이다. 어느 핀란드 여인의 술접대(?)를 받아주고, 그 여인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몸과 마음의 위로가 되어준다. 이는 다른 사람들과 당사자가 당황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대단한 기술이다.



**  '여유'를 상징하는 핀란드에 가면 우리도 이들처럼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던지는 친절을 베풀게 될까? 삶의 목적이 흔들리지 않게 현재의 시간을 느긋하게 보낼 수 있을까? 어쩌면 주변 환경이 느긋해지면 삶의 목적 또한 느긋하게 방향을 잃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을 찾았다. 어쩌면 사치에도 그동안 뚜렷한 삶의 방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미도리상과 마사코상을 만나기 전에는 말이다. 사람 속에서, 그들과의 접촉 속에서 또 다들 접촉들 만들 수 있었고, 그 수많은 접촉들 속에서 여유를 만나고 삶의 방향을 만났는지도 모른다. 즉, 소중한 사람과의 접촉이 삶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내 삶을 보다 여유롭게 끌고 가고 싶다면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느껴보자. 그리고 그 소중한 감정을 흔들리지 않고 잘 가지고 간다면 삶의 방향따위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꺼라 확신한다.
Posted by 풀빛소녀

정녕.. 이렇게 거창하게밖에 제목을 쓸 수 없음에 오늘 참 글발 안서겠구나.. 싶지만서도.. 왠지 꼭 한번은 담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이렇게 힘겹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다섯은 너무 많아'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현직 교사가 방학을 이용해 찍은 독립영화인데,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영화 매니아들이라면 한번쯤 접해봤을 영화이지 싶다.


한 젊은 처자가 객지에 나와 반지하 단칸방에 살면서 평범하게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일이라고 하기보다는 사실 아르바이트에 가까운 도시락집 점원일을 하는 이 처자는 꼬박꼬박 월급의 상당량을 부모님께 보내드린다. 우연히, 한 철딱서니없는 남자 고딩하나를 거둬들이게 되고,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조선족 아가씨와 그 아가씨가 일하던 식당 주인 남자도 함께 단칸방에 부대껴 지내게 된다.

우연한 기회에 비좁은 바닥에서 다같이 드러눕게 된 이 요상한 가족(?)은 사실 일반적인 가족보다 훨씬 더 기능적이다.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딸앞에 명품백 들고 나타나서 왜 이번달 용돈을 안부쳤냐며 다그치는 친엄마보다는, 마음을 나누며 함께 사는 남이 훨씬 더 낫다.

아직 유교사상이 팽배한 우리 사회는 무조건 '부모'이기 때문에, '자식'이기때문에 강요하고, 강요받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 이유 하나로 서로의 귀를 틀어막고 서로의 주장만 하다가 결국 서로 상처투성이가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는 그냥 '가족'이니까.. 그놈의 '가족'이라는 이름 하나로 대충 얼버무리며 화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가족의 기능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부모, 자식' 이 전에, 인간으로서의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본다. 부모이기에 함부로 말할 수 있고, 자식이기에 무조건 따라야하는 이러한 발상,,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대드는 것'으로 치부되는 발상들이 없어지지 않는 한, 현대 사회에서 그 누국도 '가족' 안에서의 상처를 피할 수 없다.

가장 가까이 있기에 더 소중히 대해야 할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고 있는가.. 적어도 나는.. 혜린아기에게 나는..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예우와 언제나 열려있는 의사소통을 기회를 적잖이 보여주려 한다. 부모든, 자식이든, 인간이기에 실수도 할 수 있고, 상처도 입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들을 회피하지 않을테다.

단순히 피를 나누었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이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Posted by 풀빛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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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들은..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세상을 가져오리라고 생각해요."

    
                 - 엄마가 키미코를 처음으로 인정하는 순간.


 

"잠깐이었지만,

내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 "

                         - 사나에와 헤어지는 순간.




도대체 뭘까.. 항상 일본 영화를 볼때마다 느꼈던.. 이 묘한 감정은..?
늘 그랬다. 딱히 떠오르는 분명한 이유는 없는데, 마냥 좋았다. 뭔가 모르게 묘한 매력이 있다.. 라고 밖에 표현이 안되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깝다는 이유로 우리는 일본을 닮으려고 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특히 상품에 관해서는 완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모방 수준에 이르는 것들도 많다.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앞서 언급했던 두 가지 이유 때문일까? 그렇다면 아예 붙어 있는 중국은 왜 그렇게 모방하지 않는 것일까?

뒤늦게 본 <훌라걸스>에서 나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카리스마'였다. 너무 모호한 답이 아니냐고? 모호해 보이지만, 사실은 너무도 분명한 답이다.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좋아하는 배우들이 꼭 여러명씩 있다. 그건 한국 배우들을 향한 설레임과는 또 다른 설렘이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늘 카리스마를 분출한다. 그들은 캐릭터 하나를 위해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감춘다. 자신의 매력을 잠시 숨겨두고 영화 속에서 캐릭터로 새로이 탄생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관객을 제대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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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가 춤을 추는 광고를 보면서, 너무 멋있어서 그녀에게 빠져드는가? 물론 너무 완벽한 외모때문에 그런 느낌을 갖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내가 봤을 때는, 저 광고 찍으려고 잠깐 배웠구나.. 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즉, 몰입해있는 캐릭터가 보이지 않고, 원래 가지고 있는 배우 자체만 강조된다. 물론 광고라서 그렇다고 하면 그건 그렇게 넘어갈 수 있지만, 연기에서도 그다지 카리스마가 보이지는 않는다. 김태희 뿐만 아니라 멋진 외모에 가려진 매력을 제대로 분출하지 못하고 있는 배우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좀 안타깝다.

그에 비해 아오이 유우의 훌라춤을 보면 가히 감동적이다. 단지 춤 자체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녀가 완벽한 이유는 춤을 추는 내내 캐릭터에 몰입해 있는 표정때문이며, 영화 내내 반복되는 그녀의 그녀 주변인들간의 사투리 대사 때문이다. 그녀는 그렇게 늘 새로운 영화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최근에 본 <철콘 근크리트>에서 시로 역의 목소리 연기는 마지막에 엔딩크레딧에서 그녀의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깜빡 모르고 지나칠 뻔 했을 정도로 완벽한 남자 꼬마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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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걸스>는 60년대 탄광촌에서 벌어진 '하와이 센터' 설립 사건을 그린 영화다. 탄광촌과 하와이 센터는 이질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석탄이 검은 다이아몬드 였을 시기가 있었다. 모든 집안의 남자들은 탄광촌에서 일했고, 그 아들들은 어른이 되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탄광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석유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탄광촌이 하나 둘 폐쇄된다. 더이상 석탄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다. 그들의 삶에 박차를 가하게 해준 석탄은 이제 퇴물로 취급되며 짧은 시간에 수천명의 사람들이 탄광촌의 폐쇄와 더불어 일자리를 잃게 된다.

무서운 것은,, 여기에서 사회의 변화를 사람들은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 있다. 변화된 사회에 걸맞게 새로운 그들만의 다이아몬드가 필요한 때에, 선견지명으로 모든 비난을 무릅쓰고 등장하는 인물이 하나 있다. 그는 '하와이 센터'라는 이름으로 온천을 개발하여 새로운 관광 사업으로 도시를 살려보고자 한다. 모든 기성층이 쌈심지를 켜고 그를 막아설 때 그들의 2세들은 '하와이 센터'를 그들의 새로운 '다이아몬드'로 가꾸기 위해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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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누군가는 엄마와의 인연도 끊고, 누군가는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하고, 또 누군가는 끝내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꿈은 남은 이들에게 남기고 떠나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인고의 세월(?)을 뛰어넘고 마침내 그들만의 '다이아몬드'를 완성한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그들의 훌라춤은 완전 압권이다. 환한 미소와 함께 빛을 내고 있던 그들의 눈물 어린 눈망울은 아직도 가슴을 찡하게 한다.

이야기도 좋지만, 영화에 빛을 밝혀주는 그 배우들이 감동이다. 역시, 일본 감독들은 배우들을 적시적소에 배정할 줄을 아는 신비한 안목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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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빛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