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13 18:40
" 선물하실 건가요?"
"아뇨, 제가 볼 겁니다."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타나
by 게오르그 드라이만
HGW XX/7에게 헌사합니다."
- <타인의 삶>에서 드라이만이 책 첫 장에 새겨진 말.
"아뇨, 제가 볼 겁니다."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타나
by 게오르그 드라이만
HGW XX/7에게 헌사합니다."
- <타인의 삶>에서 드라이만이 책 첫 장에 새겨진 말.
누구나 '나의' 혹은 '우리' 등으로 시작하는 문장과 '남', 또는 '타인'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보면 온도 차이를 느끼게 마련이다. '타인의 삶'이라는 제목은 아주 차갑다. '타인'이라는 것도 그렇거니와, 그들의 '삶'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남 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먼저 차가운 제목과 함께 나오는 차가운 동독의 전시체제 분위기, 그리고 그 속에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동독의 비밀경찰들의 굳은 모습들.. 그리고 제목에 걸맞게 냉혈한 주인공 비즐러가 등장한다. 그는 국가에 충성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없어 하는 인물이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으며, 무고한 시민을 협박해서라도 국가가 원하는 정보를 캐내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타인의 삶'을 감시하다 '자신의 삶'을 투영시켜 인생을 바꿔버리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누군가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강한 소신대로 글을 쓰고 싶어하는 드라이만의 열정을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권력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더러운 뒷거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크리스타를 보며 동정을 느꼈기 때문일까? 어차피 이 부부와 비즐러는 서로의 신념이 강한데, 단순히 상대방의 신념을 보았다고 해서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혹은, 그가 '국가에 충성'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잃은 것은 아닐까? 다행이 그건 아닌것 같다. 그는 드라이만 관찰에 대한 임무 수행을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우편실로 좌천되고 마니까.. 그가 드라이만 일당으로 흡수되거나, 어떤 형태로든 국가의 속박으로부터 탈출한 모습이 보여지지 않았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행여라도 비즐러의 행보가 그런 유사하게라도 갔다면 아마 이 영화에 대해 실망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드라이만을 관찰하면서 그들을 사랑하게 된 거라고 생각한다. 관찰 대상 속에 사람이 숨쉬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국가가 지시한 이상 그의 눈에는 타인에 대한 그 어떤 것도 '정'을 쏟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임무 대상일 뿐이었던 그에게, 드라이만 부부의 일상은 그의 삶을 돌아보게 되면서 그들의 삶에 애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조금이라도 의심되면 쳐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 그에게 있어서 드라이만 부부의 일상은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점차 그들의 일상이 국가에 반하는 어떤 행동보다도 더 크게 보여지고, 그들이 고통스러울 때 함께 고통스럽고, 그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도움의 손길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크리스타는 한없이 나약할 수 밖에 없는 여성의 역할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다. 그녀는 육체를 탐하는 권력에게 힘없이 허락해버리고, 그 고통을 결국 마약으로 달랜다. 이 나약한 여성은 마약으로 체포되고, 드라이만을 배신하며 그 죄책감에 결국 목숨까지 버린다. 어쩌면 그런 그녀의 존재로 인해 드라이만이 더 부각되어 보였을 지도 모른다.
드라이만은 최소한, 자신의 일상을 사랑했으며, 자신의 신념을 사랑했고, 그리고 자신의 여자를 사랑했다. 섣불리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그 강한 믿음은 오랫동안 관찰해오던 비즐러에게 전해졌고, 그들은 마치 가족처럼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비즐러에게 있어서 '타인'이었던 드라이만 부부의 삶은, 곧 그들 자신에게는 '나의 삶'이다. 반대로 현재 '나'의 삶은 다른 이에게 있어서 '타인의 삶'이다. 즉, '타인의 삶'이라는 것은 이름만 있을 뿐 그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가치는 항상 '나'와 같은 값을 가진다.
마지막에 드라이만이 HGW XX/7 을 찾아가는 장면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속은 시원하지만 어쩌면 그 여운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을테니까..
'나의 삶'에 '타인'을 새겨넣은 마지막 장면,,
그 출렁임을 나는 아마도 평생 간직할 것 같다.